본문 바로가기
밀리터리 이야기

명량대첩 승리의 주역 천자총통 화포

by 감성이야기 2016. 12. 1.
728x90

명량대첩이란?

1597년 음력 9월16일 아침 정유때 이순신이

명량(울돌목 :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으로 정의 합니다.


 

명량대첩의 비밀 13척이 어떻게 333척을 이겼나?

여기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울돌목의 거칠고 빠른 물살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책략 입니다.

하지만, 울돌목의 거칠고 빠른 물살을 전략적으로 사용함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이후

"실로 천행이다" 라는 말은 했습니다.

과연 천행 뿐이였을까요? 그 주에는 조선 수군이 승리 할 수 밖에 없는

"천자총포" 우리군의 화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조선수군 전력의 전부인13척은 일본전함 333척을 맞서싸우기 위해

명량 해역을 맞이합니다.

13척중 이순신 장군의 전함 1척이 먼저 맞서 싸웁니다.

이렇게 명량해전 그막이 시작 됩니다.

 

그 결과는우리가 알고 있듯이 참으로 경이롭고 놀랍습니다.

전사자 2명, 부상자 3명

13척 전함 모두 추정 전사 30여명, 부상 40여명으로

많이 잡아도 100여명으로 추산 됩니다.

 

그에 비해 일본군의 피해는 어마어마 합니다.

 

격침된 배의 사망자는 3,500여명

반파도주 배의 기록은 없습니다만, 추정으로 4,500여명은 전사 또는 익사로 추정됩니다.

모든 일본군의 피해는 최소한 8,000여명으로 추정집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 수군의 안택선은 조선수군의 판옥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일본 군사사학회 이사 사토 가즈오의 증언입니다.

 

구조상 비슷하지만 우리 판옥선에 비하면 작았습니다.

조선과 일본의 배를 만드는 기술의 차이 이것은 우리 수군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요인중 하나 입니다.

 

 

■울돌목

엄청난 조류가 승리의 요인으로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유인작전에 휘말려 패배의 요인으로 예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거칠고 빠른 물살의 울돌목을 선택한 이순신장군

그 울돌목을 이용한 것은 맞지만 그 울돌목에 유인만해서 승리로 이끈 주역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힘듭니다.

그이유는 바로 일본 시코쿠의 미야쿠보 지역

일본 수군의 탄생지 그곳에도 바로 울돌목 처럼 강한물쌀의 해협이 있습니다.

구로시마 수군의 본거지는 이곳을 지납니다.

이런 빠른 물살에는 익숙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좁은 급조류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작전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불가능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량해전 이순신의 비장의 카드임은 틀림 없습니다.

 

 

■일본 조총 VS 조선 천자총통(함포)

결정적인 이순신장군의 해전 명량해전의 승리로 이끈 주역중 하나인 우리수군의 함포

"천자총통" 입니다.

 

일본의 주력은 조총(서양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조총 역시 화약무기입니다.

 

천자총통(天字銃筒)은 조선시대 대형 총통 중에서 가장 큰 총통으로

천·지·현·황 중 가장 큰 대형 화포 였습니다.

 

해전에서 화약무기를 사용한 것은 고려말기지만 함포 함대!!

즉, 근대적 의미에서 함포 함대라고 하는 것은 이순신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자총통

구경은 15cm에 무게는 298kg이나 됩니다.

한번 발사시 사용대는 화약은 1.1Kg으로 화약을 넣은다음 경목으로 바치고 탄환을 넣어 사용 하였습니다.

천자총통에 대장군전까지 이렇게 어마무시한 함포를 사용한

우리수군이 사용한 반면 일본수군은 조총으로 상대하기란

아무리 많은 수척 우세여도 힘들 었던 것입니다.

 

 

그럼, 일본군은 화포가 없었나?

일본군은 화포를 만들 기술이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서양에서 들어온 화포를 사용한다고 해도

배에 들보에다 메달아서 써야 했던 것입니다.

그이유는 대포를 배에 싣기 위해서는 선체가 매우 튼튼해야 하는데

일본의 배는 도저히 그럴만한 배가 못된 것입니다.

대포를 활용하지 못한 이유죠.

 

그에비해 조선의 판옥선 그리고 거북선은 천자총통을 앞뒤,

그외 총통들을 배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채연석 교수(최초로 신기전을 복원한 사람)는 거북선은 2층 구조가 아닌 3층구조 라고 합니다.

조선 후기 문헌에도 갑판위에 상갑판이 또 설치 되었음을 말하며

 

 

노를 젓고 활을 쏘는 곳 그리고 총통의 배치를 틀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총통의 위력으로 측면에 배치되면 배가 뒤집 힌다고 합니다.

그만큼 엄청난 위력의 천자총통!!

 

 

 

 

 

 

 


추가적으로 피난선 100여척을 전선으로 위장해 뒤에서 성원하게 하였다는 것과

철쇄를 협수로에 깔아 적선을 전복 시켰다는 기록도 일부 전해 오고있습니다.

 

■철쇄

많은 기록은 없지만 철쇄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쇠사슬과 철구로 적선을 깨뜨렸다

막개를 이용하여, 울돌목에서 수로의 폭이 가장 좁았던 진도대교가 있는 자리에 걸어

양쪽에 막개를 이용하여 잡아당기면 쇠사슬에 막혀 차곡차곡 쌓이며 서로 부딪히고 깨졌을 것입니다.

이때 조선 수군이 전진하여 맹렬한 화포 공격을 펼쳤을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 수군 쪽으로 1시간 뒤면 물살이 바뀌고

후퇴하던 일본군을 좀더 몰아 부쳤을 것입니다.

 

 

1905년 러시아 함대를 괴멸시킨 도고제독은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는 견줄 수 없습니다.

  이 도고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순신 장군은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정말 뛰어난 전략과 우리의 화약무기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뒤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728x90